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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진리

방랑시인 김삿갓 시 모음(펌) 본문

나의 이야기

방랑시인 김삿갓 시 모음(펌)

사천진리 2011. 11. 13. 21:13

 

김삿갓 시모음 초

 


서당 욕설시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보니
방 안에 모두 귀한 분들일세.
생도는 모두 열 명도 못 되고
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네.

辱說某書堂 욕설모서당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서당내조지 방중개존물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생도제미십 선생내불알

*추운 겨울날 서당에 찾아가 재워주기를 청하나 훈장은 미친 개 취급하며 내쫓는다.
인정없는 훈장을 욕하는 시. 소리나는대로 읽어야 제 맛이 난다.

 

공씨네 집에서

문 앞에서 늙은 삽살개가 콩콩 짖으니
주인의 성이 공가인 줄 알겠네.
황혼에 나그네를 쫓으니 무슨 까닭인가
아마도 부인의 아랫구멍을 잃을까 두려운거지.

辱孔氏家 욕공씨가
臨門老尨吠孔孔 知是主人姓曰孔 임문노방폐공공 지시주인성왈공
黃昏逐客緣何事 恐失夫人脚下孔 황혼축객연하사 공실부인각하공

*구멍 공(孔)자를 공공(개 짖는 소리), 공가(성), 구멍이라는 세 가지 뜻으로 썼다.


고향 생각

서쪽으로 이미 열세 고을을 지나왔건만
이곳에서는 떠나기 아쉬워 머뭇거리네.
아득한 고향을 한밤중에 생각하니
천지 산하가 천추의 나그네길일세.
지난 역사를 이야기하며 비분강개하지 마세.
영웅 호걸들도 다 백발이 되었네.
여관의 외로운 등불 아래서 또 한 해를 보내며
꿈 속에서나 고향 동산에 노닐어 보네.

思鄕 사향
西行己過十三州 此地猶然惜去留 서행기과십삼주 차지유연석거유
雨雪家鄕人五夜 山河逆旅世千秋 우운가향인오야 산하역려세천추
莫將悲慨談靑史 須向英豪問白頭 막장비개담청사 수향영호문백두
玉館孤燈應送歲 夢中能作故園遊 옥관고등응송세 몽중능작고원유

*오야(五夜)는 오경(五更)으로 오전 3시부터 5시 까지이다.

 

 

아내를 장사지내고

만나기는 왜 그리 늦은데다 헤어지기는 왜 그리 빠른지
기쁨을 맛보기 전에 슬픔부터 맛보았네.
제삿술은 아직도 초례 때 빚은 것이 남았고
염습옷은 시집 올 때 지은 옷 그대로 썼네.
창 앞에 심은 복숭아 나무엔 꽃이 피었고
주렴 밖 새 둥지엔 제비 한 쌍이 날아 왔는데
그대 심성도 알지 못해 장모님께 물으니
내 딸은 재덕을 겸비했다고 말씀하시네.

喪配自輓 상배자만
遇何晩也別何催 未卜其欣只卜哀 우하만야별하최 미복기흔지복애
祭酒惟餘醮日釀 襲衣仍用嫁時裁 제주유여초일양 습의잉용가시재
窓前舊種少桃發 簾外新巢雙燕來 창전구종소도발 염외신소쌍연래
賢否卽從妻母問 其言吾女德兼才 현부즉종처모문 기언오녀덕병재

*시집 온 지 얼마 안 되는 아내의 상을 당한 남편을 대신하여 지은 시이다.
아내가 떠난 집에 제비가 찾아오고 복숭아 꽃이 피니, 아내를 그리는 정이 더욱 간절해짐을 표현했다.


기생에게 지어 주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어울리기 어렵더니
이제는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네.
주선(酒仙)이 시은(市隱)과 사귀는데
이 여협객은 문장가일세.
정을 통하려는 뜻이 거의 합해지자
달그림자까지 합해서 세 모습이 새로워라.
서로 손 잡고 달빛 따라 동쪽 성곽을 거닐다가
매화꽃 떨어지듯 취해서 쓰러지네.

贈妓 증기
却把難同調 還爲一席親 각파난동조 환위일석친
酒仙交市隱 女俠是文人 주선교시은 여협시문인
太半衿期合 成三意態新 태반금기합 성삼의태신
相携東郭月 醉倒落梅春 상휴동곽월 취도락매춘

*주선(酒仙)은 술을 즐기는 김삿갓 자신.
시은(市隱)은 도회지에 살면서도 은자같이 지내는 사람.
이백(李白)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에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이라고 하여
달, 자신, 자신의 그림자가 모여 셋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술을 좋아하는 시객(詩客)이 아름다운 기녀와 대작을 하며 시로 화답하고 봄 밤의 취흥을 즐기는 풍류시이다.

 

어느 여인에게

나그네 잠자리가 너무 쓸쓸해 꿈자리도 좋지 못한데
하늘에선 차가운 달이 우리 이웃을 비추네.
푸른 대와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를 자랑하고
붉은 복사꽃 흰 오얏꽃은 한 해 봄을 즐기네.
왕소군의 고운 모습도 오랑케 땅에 묻히고
양귀비의 꽃 같은 얼굴도 마외파의 티끌이 되었네.
사람의 성품이 본래부터 무정치는 않으니
오늘 밤 그대 옷자락 풀기를 아까워하지 말게나.

贈某女 증모녀
客枕條蕭夢不仁 滿天霜月照吾隣 객침조소몽불인 만천상월조오린
綠竹靑松千古節 紅桃白李片時春 녹죽청송천고절 홍도백리편시춘
昭君玉骨湖地土 貴비花容馬嵬塵 소군옥골호지토 귀비화용마외진
人性本非無情物 莫惜今宵解汝거 인성본비무정물 막석금소해여거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元帝)의 궁녀. 흉노 땅에서 죽음.
*마외파는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을때 양귀비가 피난 갔다가 죽은 곳.
*김삿갓이 전라도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커다란 기와집을 찾아갔다.
주인은 나오지 않고 계집종이 나와서 저녁상을 내다 주었다.
밥을 다 먹은 뒤에 안방 문을 열어보니 소복을 입은 미인이 있었는데 독수공방하는 어린 과부였다.
밤이 깊은 뒤에 김삿갓이 안방에 들어가자 과부가 놀라 단도를 겨누었다.
김삿갓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길인데 목숨만 살려 달라고 하자 여인이 운을 부르며 시를 짓게 하였다.

 

그림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날 따르는데도 고마워 않으니
네가 나와 비슷하지만 참 나는 아니구나.
달빛 기울어 언덕에 누우면 도깨비 모습이 되고
밝은 대낯 뜨락에 비치면 난쟁이처럼 우습구나.
침상에 누워 찾으면 만나지 못하다가
등불 앞에서 돌아보면 갑자기 마주치네.
마음으로는 사랑하면서도 종내 말이 없다가
빛이 비치지 않으면 자취를 감추네.

詠影 영영
進退隨농莫汝恭 汝농酷似實非농 진퇴수농막여공 여농혹사실비농
月斜岸面篤魁狀 日午庭中笑矮容 월사안면독괴상 일오정중소왜용
枕上若尋無覓得 燈前回顧忽相逢 침상약심무멱득 등전회고홀상봉
心雖可愛終無信 不映光明去絶踪 심수가애종무신 불영광명거절종

* ....아직 그의 파격적인 희롱의 시편들을 예감하기에는 이르다.
....그의 마음 가운데 잉태하고 있는 시의 파괴적인 상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시의 내용에서 어떤 우수나 비애도 내비치지않은 냉철한 서술이 있는데 바로 이 서술에서
그의 장난스러운 상상력을 얼핏 내보이고 있다.
-고은 <김삿갓 1>

 

 

길가에서 처음 보고

그대가 시경 한 책을 줄줄 외우니
나그네가 길 멈추고 사랑스런 맘 일어나네.
빈 집에 밤 깊으면 사람들도 모를테니
삼경쯤 되면 반달이 지게 될거요. -김삿갓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 눈 가리기 어려우니
마음 있어도 말 못해 마음이 없는 것 같소.
담 넘고 벽 뚫어 들어오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내 이미 농부와 불경이부 다짐했다오. -여인

街上初見 가상초견
芭經一帙誦分明 客駐程참忽有情 파경일질송분명 객주정참홀유정
虛閣夜深人不識 半輪殘月已三更 -金笠詩 허각야심인불식 반륜잔월이삼경 -김립시
難掩長程十目明 有情無語似無情 난엄장정십목명 유정무어사무정
踰墻穿壁非難事 曾與農夫誓不更 -女人詩 유장천벽비난사 증여농부서불경 -여인시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여인들이 논을 메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미인이 시경을 줄줄 외우고 있어서 김삿갓이 앞구절을 지어 그의 마음을 떠 보았다.
그러자 여인이 뒷구절을 지어 남편과 다짐한 불경이부(不更二夫)의 맹세를 저 버릴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천황씨가 죽었나 인황씨가 죽었나
나무와 청산이 모두 상복을 입었네.
밝은 날에 해가 찾아와 조문한다면
집집마다 처마 끝에서 눈물 뚝뚝 흘리겠네.

雪 설
天皇崩乎人皇崩 萬樹靑山皆被服 천황붕호인황붕 만수청산개피복
明日若使陽來弔 家家첨前淚滴滴 명일약사양내조 가가첨전누적적

*천황씨와 인황씨는 고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임금이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을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여 흘리는 눈물에 비유하였다.

 

늙은 소

파리한 뼈는 앙상하고 털마저 빠졌는데
늙은 말 따라서 마굿간을 같이 쓰네.
거친 들판에서 짐수레 끌던 옛공은 멀어지고
목동 따라 푸른 들에서 놀던 그 시절 꿈 같아라.
힘차게 끌던 쟁기도 텃밭에 한가히 놓였는데
채찍 맞으며 언덕길 오르던 그 시절 괴로웠었지.
가련해라 밝은 달밤은 깊어만 가는데
한평생 부질없이 쌓인 고생을 돌이켜보네.

老牛 노우
瘦骨稜稜滿禿毛 傍隨老馬兩分槽 수골릉릉만독모 방수노마양분조
役車荒野前功遠 牧竪靑山舊夢高 역거황야전공원 목수청산구몽고
健우常疎閑臥圃 苦鞭長閱倦登皐 건우상소한와포 고편장열권등고
可憐明月深深夜 回憶平生만積勞 가련명월심심야 회억평생만적노

*세월의 무상함은 인간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늙은 소를 보고서도 세월이 앗아간 전날의 혈기 넘쳤던 때를 생각할 수 있다.

 

회양을 지나다가

산 속 처녀가 어머니만큼 커졌는데
짧은 분홍 베치마를 느슨하게 입었네.
나그네에게 붉은 다리를 보이기 부끄러워
소나무 울타리 깊은 곳으로 달려가 꽃잎만 매만지네.

淮陽過次 회양과차
山中處子大如孃 緩著粉紅短布裳 산중처자대여양 완저분홍단포상
赤脚낭창羞過客 松籬深院弄花香 적각낭창수과객 송리심원농화향

*'낭'은 足(족)부에 良, '창'은 足(족)부에 倉.
*김삿갓이 물을 얻어먹기 위해 어느 집 사립문을 들어 가다가 울타리 밑에 핀 꽃을 바라보고 있는 산골 처녀를 발견했다.
처녀는 나그네가 있는 줄도 모르고 꽃을 감상하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난 다리를 감추려는 듯 울타리 뒤에 숨었다.

 

 

피하기 어려운 꽃

청춘에 기생을 안으니 천금이 초개 같고
대낮에 술잔을 대하니 만사가 부질없네.
먼 하늘 날아가는 기러기는 물 따라 날기 쉽고
청산을 지나가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네.

難避花 난피화
靑春抱妓千金開 白日當樽萬事空 청춘포기천금개 백일당준만사공
鴻飛遠天易隨水 蝶過靑山難避花 홍비원천이수수 접과청산난피화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청년들이 기생들과 놀고 있었다.
김삿갓이 부러워하여 한자리에 끼어 술을 얻어 마신 뒤 이 시를 지어 주었다.

 

 

기생과 함께 짓다

평양 기생은 무엇에 능한가. -김삿갓
노래와 춤 다 능한 데다 시까지도 능하다오.-기생
능하고 능하다지만 별로 능한 것 없네. -김삿갓
달 밝은 한밤중에 지아비 부르는 소리에 더 능하다오. -기생

妓生合作 기생합작
金笠. 平壤妓生何所能 김립. 평양기생하소능
妓生. 能歌能舞又詩能 기생. 능가능무우시능
金笠. 能能其中別無能 김립. 능능기중별무능
妓生. 月夜三更呼夫能 기생. 월야삼경호부능

*평양감사가 잔치를 벌이면서 능할 능(能)자 운을 부르자 김삿갓이 먼저 한 구절을 짓고 기생이 이에 화답하였다.

 

낙민루

선정을 펴야 할 선화당에서 화적 같은 정치를 펴니
낙민루 아래에서 백성들이 눈물 흘리네.
함경도 백성들이 다 놀라 달아나니
조기영의 집안이 어찌 오래 가랴.

낙민루

宣化堂上宣火黨 樂民樓下落民淚 선화당상선화당 낙민루하낙민루
咸鏡道民咸驚逃 趙岐泳家兆豈永 함경도민함경도 조기영가조기영

*관찰사가 집무 보는 관아를 선화당이라고 하였다.
*구절마다 동음이의어를 써서 함경도 관찰사 조기영의 학정을 풍자했다.
宣化堂(선정을 베푸는 집) 宣火黨(화적 같은 도둑떼)
樂民樓(백성들이 즐거운 집) 落民淚(백성들이 눈물 흘리다)
咸鏡道(함경도) 咸驚逃(모두 놀라 달아나다)
趙岐泳(조기영) 兆豈永(어찌 오래 가겠는가)

 


스스로 탄식하다

슬프다 천지간 남자들이여
내 평생을 알아줄 자가 누가 있으랴.
부평초 물결 따라 삼천리 자취가 어지럽고
거문고와 책으로 보낸 사십 년도 모두가 헛것일세.
청운은 힘으로 이루기 어려워 바라지 않았거니와
백발도 정한 이치이니 슬퍼하지 않으리라.
고향길 가던 꿈꾸다 놀라서 깨어 앉으니
삼경에 남쪽 지방 새 울음만 남쪽 가지에서 들리네.

自嘆 자탄
嗟乎天地間男兒 知我平生者有誰 차호천지간남아 지아평생자유수
萍水三千里浪跡 琴書四十年虛詞 평수삼천리랑적 금서사십년허사
靑雲難力致非願 白髮惟公道不悲 청운난력치비원 백발유공도불비
驚罷還鄕夢起坐 三更越鳥聲南枝 경파환향몽기좌 삼경월조성남지

*월조(越鳥)는 남쪽 지방의 새인데 다른 지방에 가서도 고향을 그리며 남쪽 가지에 앉는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야박한 풍속

석양에 사립문 두드리며 멋쩍게 서있는데
집 주인이 세 번씩이나 손 내저어 물리치네.
저 두견새도 야박한 풍속을 알았는지
돌아가는 게 낫다고 숲속에서 울며 배웅하네.

風俗薄 풍속박
斜陽鼓立兩柴扉 三被主人手却揮 사양고립양시비 삼피주인수각휘
杜宇亦知風俗薄 隔林啼送不如歸 두우역지풍속박 격림제송불여귀

가난이 죄

지상에 신선이 있으니 부자가 신선일세.
인간에겐 죄가 없으니 가난이 죄일세.
가난뱅이와 부자가 따로 있다고 말하지 말게나.
가난뱅이도 부자되고 부자도 가난해진다오.

難貧 난빈
地上有仙仙見富 人間無罪罪有貧 지상유선선견부 인간무죄죄유빈
莫道貧富別有種 貧者還富富還貧 막도빈부별유종 빈자환부부환빈


비를 만나 시골집에서 자다

굽은 나무로 서까래 만들고 처마에 먼지가 쌓였지만
그 가운데가 말만해서 겨우 몸을 들였네.
평생 동안 긴 허리를 굽히려 안했지만
이 밤에는 다리 하나도 펴기가 어렵구나.
쥐구멍으로 연기가 들어와 옻칠한 듯 검어진 데다
봉창은 또 얼마나 어두운지 날 밝는 것도 몰랐네.
그래도 하룻밤 옷 적시기는 면했으니
떠나면서 은근히 주인에게 고마워 했네.

逢雨宿村家 봉우숙촌가
曲木爲椽첨着塵 其間如斗僅容身 곡목위연첨착진 기간여두근용신
平生不欲長腰屈 此夜難謀一脚伸 평생불욕장요굴 차야난모일각신
鼠穴煙通渾似漆 봉窓茅隔亦無晨 서혈연통혼사칠 봉창모격역무신
雖然免得衣冠濕 臨別慇懃謝主人 수연면득의관습 임별은근사주인

*어느 시골집에서 비를 피하며 지은 것으로 궁벽한 촌가의 정경과 선비로서의 기개가 엿보이는 시이다.
누추하지만 나그네에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베풀어 준 주인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하면서 세속에 굽히지 않으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주막에서

천릿길을 지팡이 하나에 맡겼으니
남은 엽전 일곱 푼도 오히려 많아라.
주머니 속 깊이 있으라고 다짐했건만
석양 주막에서 술을 보았으니 내 어찌하랴.

艱飮野店 간음야점
千里行裝付一柯 餘錢七葉尙云多 천리행장부일가 여전칠엽상운다
囊中戒爾深深在 野店斜陽見酒何 낭중계이심심재 야점사양견주하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떠돌아 다니는 나그네 길, 어쩌다 생긴 옆전 일곱닢이 전부지만 저녁놀이 붉게 타는 어스름에
술 한 잔으로 허기를 채우며 피곤한 몸을 쉬어가는 나그네의 모습.



제목을 잃어 버린 시

수많은 운자 가운데 하필이면 '멱'자를 부르나.
그 '멱'자도 어려웠는데 또 '멱'자를 부르다니.
하룻밤 잠자리가 '멱'자에 달려 있는데
산골 훈장은 오직 '멱'자만 아네.

失題 

 
許多韻字何呼覓 彼覓有難況此覓 허다운자하호멱 피멱유난황차멱
一夜宿寢懸於覓 山村訓長但知覓 일야숙침현어멱 산촌훈장단지멱

*김삿갓이 어느 산골 서당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하니 훈장이 시를 지으면 재워 주겠다고 하면서
시를 짓기 어려운 '멱'(覓)자 운을 네 번이나 불렀다. 이에 훈장을 풍자하며 재치있게 네 구절 다 읊었다.



농가에서 자다

골짜기 따라 종일 가도 사람을 못 보다가
다행히도 오두막집을 강가에서 찾았네.
문을 바른 종이는 여와 시절 그대로고
방을 쓸었더니 천황씨 갑자년 먼지일세.
거무튀튀한 그릇들은 순임금이 구워냈고
불그레한 보리밥은 한나라 창고에서 묵은 것일세.
날이 밝아 주인에게 사례하고 길을 나섰지만
지난밤 겪은 일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구나.

宿農家 숙농가
終日緣溪不見人 幸尋斗屋半江濱 종일연계불견인 행심두옥반강빈
門塗女와元年紙 房掃天皇甲子塵 문도여와원년지 방소천황갑자진
光黑器皿虞陶出 色紅麥飯漢倉陳 광흑기명우도출 색홍맥반한창진
平明謝主登前途 若思經宵口味幸 평명사주등전도 약사경소구미행

*여와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천지를 만들었다는 인물, 천황씨는 전설에 나오는 고대 중국 임금.


즉흥적으로 읊다

내 앉은 모습이 선승 같으니 수염이 부끄러운데
오늘 밤에는 풍류도 겸하지 못했네.
등불 적막하고 고향집은 천 리인데
달빛마저 쓸쓸해 나그네 혼자 처마를 보네.
종이도 귀해 분판에 시 한 수 써놓고
소금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마시네.
요즘은 시도 돈 받고 파는 세상이니
오릉땅 진중자의 청렴만을 내세우지는 않으리라.

卽吟 즉음
坐似枯禪反愧髥 風流今夜不多兼 좌사고선반괴염 풍류금야부다겸
燈魂寂寞家千里 月事肅條客一첨 등혼적막가천리 월사숙조객일첨
紙貴淸詩歸板粉 肴貧濁酒用盤鹽 지귀청시귀판분 효빈탁주용반염
瓊거亦是黃金販 莫作於陵意太廉 경거역시황금판 막작어릉의태염

*진중자(陳仲子)는 제나라 오릉(於陵)에 살았던 청렴한 선비.


나를 돌아보며 우연히 짓다

푸른 하늘 웃으며 쳐다보니 마음이 편안하건만
세상길 돌이켜 생각하면 다시금 아득해지네.
가난하게 산다고 집사람에게 핀잔 받고
제멋대로 술 마신다고 시중 여인들에게 놀림 받네.
세상만사를 흩어지는 꽃같이 여기고
일생을 밝은 달과 벗하여 살자고 했지.
내게 주어진 팔자가 이것뿐이니
청운이 분수밖에 있음을 차츰 깨닫겠네

自顧偶吟 자고우음
笑仰蒼穹坐可超 回思世路更초초 소앙창궁좌가초 회사세로경초초
居貧每受家人謫 亂飮多逢市女嘲 거빈매수가인적 난음다봉시녀조
萬事付看花散日 一生占得月明宵 만사부간화산일 일생점득월명소
也應身業斯而已 漸覺靑雲分外遙 야응신업사이이 점각청운분외요

*세속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지내는 자신의 생활을 감회에 젖어 읊은 시이다.


시시비비

이 해 저 해 해가 가고 끝없이 가네.
이 날 저 날 날은 오고 끝없이 오네.
해가 가고 날이 와서 왔다가는 또 가니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이 가운데 이뤄지네.

是是非非詩 시시비비시
年年年去無窮去 日日日來不盡來 년년년거무궁거 일일일래부진래
年去月來來又去 天時人事此中催 년거월래래우거 천시인사차중최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

是是非非非是是 是非非是非非是 시시비비비시시 시비비시비비시
是非非是是非非 是是非非是是非 시비비시시비비 시시비비시시비


기생 가련에게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可憐妓詩 가련기시
可憐行色可憐身 可憐門前訪可憐 가련행색가련신 가련문전방가련
可憐此意傳可憐 可憐能知可憐心 가련차의전가련 가련능지가련심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의 딸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힘든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이별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말라.
가련을 잊지 않고 가련에게 다시 오리니.

離別 이별
可憐門前別可憐 可憐行客尤可憐 가련문전별가련 가련행객우가련
可憐莫惜可憐去 可憐不忘歸可憐 가련막석가련거 가련불망귀가련

금강산에서 중과 김 삿갓의 시회

 

중 --- 이른 아침 입석 봉에 오르니 구름은 발아래 생기고

 

朝登立石雲生足  조등입석운생족

 

삿갓 - 저녁에 황천강의 물을 마시니 달이 입술에 걸리더라

 

暮飮黃泉月掛  모음황천월괘순

 

중 --- 사람의 그림자는 물 속에 잠기어도 옷은 하나도 젖지 않았다

 

影浸綠水衣無濕  경침록수의무습

 

삿갓 - 꿈속에 청산을 오르내렸어도 다리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네

 

夢踏靑山脚不苦  몽답청산각불고(脚)다리각

 

중 --- 산 위의 돌은 천년이나 굴러야 땅에 닿을 듯하고

 

石轉千年方倒地  석전천년방도지(倒)넘어질도

 

삿갓 - 산이 한 자만 더 높으면 손이 하늘에 닿을 듯하여라

 

峰高一尺敢摩天 봉고일척감 천

 

중 --- 가을 구름이 만 리에 뻗었으니 흰 고기비늘이 겹쌓인 것 같고

 

秋雲萬里魚鱗白 추운만리어인백

 

삿갓 - 천년 묵은 고목의 뻗친 가지는 사슴의 뿔이 높이 솟은 듯 하구나

 

枯木千年鹿角高  고목천년녹각고

 

중 --- 청산을 돈을 주고 샀더니 구름은 공으로 얻고

 

靑山買得雲空得 청산매득운공득

 

삿갓 - 맑은 물가에 다다르니 고기는 저절로 모여 드누나

 

白水臨來魚自來 백수림래어자래

 

중 --- 절벽은 비록 위태롭게 솟아 있어도 그 위에서 꽃이 웃는 경치가 좋고

 

絶壁雖危花笑立 절벽수위화소입

 

삿갓 - 양춘은 비록 아름다워도 새는 울며 떠나가니 비감이 생긴다

 

陽春最好鳥啼歸 양춘최호조제귀

 

중 --- 물은 은 절 굿 공이가 되어 절벽을 연방 내리찧고

 

水作銀杵용絶壁 수작은저용절벽

 

삿갓 - 구름은 옥으로 만든 자가 되어 청산을 재어간다

 

雲爲玉尺度靑山 운위옥척도청산

 

달이 희고 눈이 희니 천지가 다 희고

 

月白雪白天地白  월백설백천지백

 

산이 깊고 물이 깊으니 나그네 수심도 깊다

 

山深水深客愁深  산심수심객수심

 

중은 김 삿갓의 마지막 구에 감동되어 입을 딱 벌렸다.